귀신보다 무서운 인간들…다채로운 사이코들을 한 권의 책에 모았다

편집자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많이들 물어본다. “문학 편집자도 기획을 할 수 있나요?” 물론이다. 특히 소설 분야에서는 대표적으로 2017년 큰 인기를 얻은 『현남 오빠에게』(다산책방) 등 테마 앤솔러지나 지난해 여성문학사연구모임에서 펴낸 『한국 여성문학 선집 세트』(민음사) 같은 의미를 담은 소설선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최근에 인상적이었던 기획서는 단연 박혜진 평론가의 『퍼니 사이코 픽션』이었는데,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발표된 단편들 중에서 기괴하게 분열된 자의식들을 보여주는 말 그대로 ‘사이코 소설’ 일곱 편과 각각 엮은이의 짧은 해설이 실린 앤솔러지였다.

소설 <퍼니 사이코 픽션> 박혜진 엮음, 클레이하우스, 2025 / 사진. © KYOBO BOOK CENTRE
소설 <퍼니 사이코 픽션> 박혜진 엮음, 클레이하우스, 2025 / 사진. © KYOBO BOOK CENTRE

아직 무서운 이야기를 찾을 만큼 더워지지 않았는데, 이렇게 등골이 서늘한 이야기를 내보내는 건 반칙이 아닌가. 어떤 때는 호러보다 읽기 힘든 것이 이런 소설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무작정 자극적인 이야기라기보다도 아주 기묘한 방식으로 내면을 파고드는 집요함에 머리가 저릿하곤 했다. 자기 전에 한 편씩 읽다가 나의 밤을 말 그대로 환하게 밝혀준 책이라서 여기 수록된 소설들의 잔상을 (원하든 원치 않든) 한동안 간직하게 될 것 같다.

사실 나는 이 앤솔러지에 참여한 작가 중 세 명의 책을 과거에 편집한 적이 있는데, 물론 그때 원고를 다듬고 작가의 전작을 검토하며 소설에서 흘러나오는 묘한 에너지에 압도되던 기억이 있지만, 이렇게 문제작을 골라서 모아놓으니 새롭게 느껴지는 감각들이 남달랐다. 이미 발표된 소설을 모은 것뿐인 듯하지만, 기획의 힘이 빛을 발하는 부분은 이런 것일 테다.

소설을 읽다 보면 박혜진 평론가의 해설이 무척 궁금하고 기대되곤 했는데, 그가 작가의 삶이나 작품적 계보를 따지기보다는 여기 실린 소설 자체의 서사와 그 안에 드러나는 인물 내면의 해석에 중심을 두기 때문에 해설을 읽으면서도 완전히 몰입하게 됐다. 거기에 더해 그가 소설을 읽은 방식과 내 글 읽기의 경험이 포개지거나 혹은 완전히 달라서 새롭게 무언가를 발견하게 할 때 무척 반갑고 신선한 감각을 느끼곤 했다.

내 해석에 자신이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내 논리와 평가가 남들 보기에도 충분히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늘 불안이 있다는 소리다. 소위 작가주의 성향이 짙은 작품일수록 그렇다. 작가가 보여주는 것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보여주지 않는 것을 찾아내 읽어야 하는 작품들.

- <퍼니 사이코 픽션> p. 277

평론가로서의 고민이 드러나는 이 부분은 특별히 메모했는데, 분열되고 착시하고 언어 자체를 깨뜨리는 소설들을 헤매며 반복해 읽던 누군가는 공감하지 않았을까. 그러다가 가끔은 이것이 공통된 의미로 이해되었을 때의 연결되었다는 감각도 있었으리라고.

사진출처. unsplash
사진출처. unsplash

그 자체로 타오르는 몸, 혹은 생고기를 탐하고, 위에 나비가 가득 차 있다거나, 모면하고 싶은 순간을 장롱에서 보내는 이들로 가득한 일곱 편의 소설. 낯설지만 익숙한 이 얼굴들은 어쩌면 더한 사람도 있을 세상에서 살아가는 나의 부정하고 싶은 초상과도 닮았을 것이다. 귀신보다 무서운 사람들, 여기 있다.

최지인 문학 편집자•래빗홀 팀장


– 출처 :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05191269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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