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동 복도에는 늘 비슷한 밝기의 빛이 내려앉아 낮과 밤의 경계가 흐릿하게 보인다. 창 밖 계절은 바뀌지만 병실 안의 하루는 언제나 비슷하다. 이곳에서 나는 ‘내과 입원전담전문의’로 환자들의 아침을 맞이하고, 그들과 하루를 보내고, 또 마무리한다.
사실 10년전 내과전문의 자격을 땄을 때, 처음부터 입원전담의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내과에는 심장이나 호흡기, 신장, 소화기, 종양, 감염 등 세분화 된 분과가 많지만, 한 분야에만 갇히기보다 다양한 환자를 치료하고 싶었다. 환자의 곁을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깊이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서서히 자랐다. 외래 진료실 문을 열고 닫는 순간의 만남보다, 환자의 창백한 아침 얼굴과 밤의 지친 눈빛을 함께 견디는 시간이 내과의 본질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대학병원 외래 진료실은 늘 북적거린다. 몇 달을 기다려 겨우 진료를 받아도 실제 진료 시간은 3분에서 5분 남짓이다. 의사는 그 짧은 순간에 증상을 듣고, 검사를 정하고, 처방까지 마쳐야 한다. 마치 환자 정보를 한 명씩 입력하면 처방전이 찍혀 나오는 자동판매기 같았다.
“선생님, 왜 이런 병이 생긴 건가요? 어떻게 치료하면 병이 완쾌될까요? 정말 병이 나을 수 있는 건가요?”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3분 안에 삶 전체를 설명해달라는 요구처럼 느껴지곤 했다. 몇 분 안에 모든 해답을 쏟아내는 능력자 보다는, 환자와 시간을 나누고, 그들의 회복 과정을 함께 견디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병동에서 입원 환자 곁을 지키는 ‘입원전담의’라는 길에 들어섰다.
병동에서 입원전담의는 진료를 하나의 긴 ‘과정’으로 바라본다.
어떤 환자는 입원 초기에 정한 치료 방침대로 조용히 회복해 나가지만, 어떤 환자는 사소해 보였던 징후들이 쌓여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그런 환자 곁에서 하루 종일 혈압이나 체온, 호흡, 의식 상태의 작은 떨림을 살피며 치료 경로와 방향을 수정해간다. 수많은 변화의 순간을 이어 붙이며 만들어가는 ‘치료 과정’을 책임지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얼마 전 내과 병동에 입원한 67세 남자 환자 얘기다. 심한 폐렴으로 입원했지만 열도 안 나고 혈압이나 호흡도 안정적이어서, 초기 치료 방침은 비교적 단순했다. 항생제를 투여하고, 산소 포화도(체내 산소가 충분한지 알려주는 수치)를 모니터링하며, 매일 흉부 엑스레이 찍으면서 폐렴이 좋아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전형적인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환자는 그런 루틴을 순순히 따라가지 않았다. 입원 다음 날 아침, 산소 포화도가 93%에서 89%로 떨어졌다가 다시 93%로 오르곤 했다. 보통 93% 정도면 심장이나 폐기능에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는데, 무언가 미세한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병실 공기에 긴장감이 흘렀다.
나는 그날 내내 그의 곁을 지켰다. 이 작은 변화가 다시 회복될 것인지, 나쁜 쪽으로 흘러갈 것인지 최대한 빨리 판단해야 했다. 체온과 혈압을 수시로 체크하며 청진기로 호흡음이 약해지는 것을 들었다. 엑스레이를 확인하니 오른쪽 폐 주변에 물이 차 있었다.
곧 열이 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아직 혈액 배양검사에서 세균이 자라지는 않았지만 패혈증으로 진행되는 것 같았다. 패혈증은 세균이 혈액을 타고 전신적으로 확산되는 중증 감염상태를 말한다. 우선 좀더 강력하게 광범위한 효과를 내는 항생제로 변경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가 되자 고열이 나면서 혈압이 갑자기 떨어졌다. 패혈증 쇼크에 빠진 것이다. 아직 의식은 또렷했지만 피부는 축축했고, 입술은 창백했다. 혈압을 올리는 승압제를 투여하고, 산소 농도를 높이면서 혈압은 안정을 되찾는 듯했지만 이번에는 소변이 나오지 않았다. 소변은 하루만 제대로 나오지 않아도 생명이 위독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서둘러 심장내과, 감염내과, 신장내과, 중환자의학팀에 연락했다. 모두 환자 침대 옆에 모여 상태를 점검하고 치료방침을 상의했다. 폐렴이 심각한 패혈증 쇼크로 이어져 심장과 신장 기능을 망가뜨렸고 투석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환자는 중환자실로 옮겨져 응급투석을 시작했다. 다행히 며칠 후 염증수치와 신장기능, 폐기능, 심장기능 모두 회복 추세로 돌아섰다.
만약 그날 아침 산소 포화도의 작은 변화를 놓쳤거나 무심히 지나쳤더라면 어땠을까. 하루의 흐름 속에서 미세하게 바뀌어 가는 이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다면 환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날, 나는 ‘입원환자 전문가’로 산다는 것은 환자 곁을 지키는 시간의 밀도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병원 환자는 크게 외래환자(Outpatient)와 입원환자(Inpatient)로 나뉜다. 외래환자는 몸 상태에 다소 이상이 있어도 검사나 간단한 시술을 받고 당일 집으로 돌아가도 되는 경증 환자를 말한다. 반면 입원환자는 심각한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해 24시간 이상 병원에 머물며 지속적인 관찰이나 치료, 수술 등 집중관리가 필요한 경우다.
이 두 환자 군을 치료할 때, 의사의 접근방식이나 전문지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1990년대부터 입원환자를 돌보는 데 필요한 전문영역이 ‘입원의학’이라는 이름으로 정착됐다. 나를 비롯해 우리나라 입원전담의들은 이제 겨우 발걸음을 뗐다.
갑자기 나빠질지도 모르는 환자를 지켜보며 치료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하는 것, 그 과정에서 생기는 모든 일들을 해결해나가는 것, 그것이 입원전담의가 해야 할 전문영역이다.
병동에서 환자에게 가장 자주 듣는 말은 후회와 걱정이다.
“그때 무리하지 말걸 그랬어요. 미루지 말고 검사를 잘 받을 걸 그랬어요.”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은 곧바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지금 치료가 잘 되고 있는 건가요? 병이 더 나빠지면 어떻게 하죠?”
아픈 순간에 사람들의 마음은 과거와 미래 사이를 끝없이 오간다. 하지만 걱정이나 후회, 두려움이나 불안이 병을 낫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몸보다 마음을 먼저 지치게 만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의 아픔을 인정하고, 현실의 치료과정에 몸을 맡긴 채 한 걸음씩 차근차근 나가가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순차적이고 순리적으로 해 나갈 수밖에 없고,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마음을 조금만 다른 방향으로 돌려보면 그 순간부터 삶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을, 환자의 치료과정을 함께 하며 가슴으로 확인할 때가 많다.
나는 오늘도 복도를 걷는다. 어떤 환자는 루틴대로 회복되고 있을 테지만, 또 다른 환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신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입원전담의라는 이름으로 병동을 지키고 있다.
<편집자 주>
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에 상주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입원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2016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입원전담의 제도는 2021년 본사업으로 전환돼 올해 꼭 10년을 맞는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는 이들이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퇴원시키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작은 순간들의 기록이다. 환자와 보호자, 다른 의료진, 그리고 입원전담의 자신에 대한 고백까지, 이 연재를 통해 병원 안에서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한입원의학회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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