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버텨라.”
이 문장은 지금의 아트바젤을 설명하기에 더없이 정확하다. 세계 아트페어의 정점에 서 있는 아트바젤은 이미 완성된 제국 위에서 안주하지 않는다. 바젤(1970), 마이애미(2002), 홍콩(2013)에 이어 2022년 파리에 상륙하며 네 번째 왕국을 세웠고, 이제 2025년에는 카타르로의 확장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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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을 쓴 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게를 버티는 힘이다. 아트바젤은 그 무게를 견디기 위해, 도시의 문화생태계를 재정의하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끊임없이 실험한다.
‘Paris+ par Art Basel’이라는 이름으로 2022년 첫선을 보인 파리 에디션은, 2024년 리노베이션을 마친 그랑팔레 복귀와 함께 공식 명칭을 ‘Art Basel Paris’로 변경했다. 바젤, 마이애미, 홍콩에 이은 네 번째 거점이자, 아트바젤의 ‘유럽 재정의 프로젝트’라 부를 만하다.
아트바젤이 이미 스위스 바젤을 통해 이미 유럽 안에 주요한 거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파리에 또 하나의 페어를 만든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브렉시트 이후 파리가 런던을 제치고 미술 거래의 허브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2023년 기준 유럽 미술시장 점유율 25%를 넘어섰으며, 로펌·보험·금융이 모두 파리로 이동했다.
둘째, 세계적 문화 인프라와 기관 네트워크다. 루브르, 퐁피두, 오르세, 까르띠에 재단, 피노 컬렉션까지 파리는 이미 도시 자체가 하나의 ‘예술 플랫폼’이다.
셋째, 북미 컬렉터의 기호다. 여름의 스위스보다 가을의 파리를 선호하며, ‘페어와 휴식이 공존하는 도시형 모델’을 원한다.
그 결과, 아트바젤 파리는 단순한 시장 확장이 아니라 ‘유럽 내 주도권 재편’을 상징한다.
아트바젤 바젤이 ‘완성형’이라면, 파리는 ‘진화형’이다. 파리 에디션은 기존 바젤보다 더 빠르고 가볍게 움직인다.
2025년에는 젊은 작가와 큐레이터 중심의 ‘Emergence’ 섹션이 신설되어 16명의 신진 작가가 단독 부스를 통해 소개되었고, ‘Premise’ 섹션에서는 기존 미술사적 서사를 비껴가는 작업들이 조명되었다. ‘Hors les murs’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 외곽 전시를 확장하고, 현대적 감각의 토크·비디오·퍼포먼스 프로그램을 강화했다. 이는 곧, 아트바젤이 단순한 마켓을 넘어 문화적 실험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트바젤은 ‘완벽함’의 반대말이 ‘정체’임을 안다. 그래서 파리에서는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낸다. 스위스의 질서와 프랑스의 감각이 충돌하는 그 지점에서, 아트바젤은 스스로의 브랜드를 재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젊어지기 위한 전략’이 아니다. 아트바젤은 스스로의 브랜드가 가진 권위가 정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험을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파리에서는 새로운 세대, 새로운 동선, 새로운 언어를 실험한다.
55년의 전통이 무겁게 내려앉은 왕관을 벗지 않되, 그 무게 중심을 바꾸어 잡는 것이다.
2025년 아트바젤 파리에서 한국을 대표한 유일한 갤러리는 국제갤러리였다. 국제갤러리는 올해 기존 단색화 계보를 넘어, 세대와 매체를 횡단하는 라인업을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김윤신, 최재은, 함경아, 양혜규, 박진아, 강서경 등 한국 대표 여성 작가를 중심으로 이희준 같은 젊은 작가를 함께 배치해 세대 간 대화를 시도했다.
티나킴 갤러리는 섬유예술의 개척자 이신자를 소개했으며, 모던 인스티튜트에서는 김보희의 제주를 배경으로 한 회화, 커먼웰스 앤 카운실에서는 갈라 포라스-김을 솔로 부스로 선보였다. 또한 갤러리르롱에서는 전현선의 작품을 선보이며 단색화 이후 세대를 대표하는 다양한 한국 작가를 파리에 알렸다.
아트바젤의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도쿄에서도 이어진다. 아트위크 도쿄(Art Week Tokyo, AWT)는 2021년부터 매년 11월 도쿄 전역에서 열리는 프로그램으로 50여 개의 갤러리·미술관·비영리 공간이 동시 참여한다. 관람객은 무료 셔틀버스로 도시를 순환하며, ‘AWT Focus’(큐레이터 전시), ‘AWT Video’, ‘AWT Talks’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한다.
아트바젤은 이 행사의 공식 글로벌 파트너로서 단순한 후원사가 아니라 도시 단위 문화사업의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다. 팬데믹 이전 아트바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와의 장기 파트너십을 발표(2018)하며, 갤러리, 아티스트, 비영리 공간을 지원하며 도시의 문화생태계 구축에 대한 시도를 했었다. 이를 통해 라틴아메리카 진출의 교두보로 삼으려 했으나, 팬데믹과 국제 정세의 변화로 이 사업은 지속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팬데믹 이후에 아트위크 도쿄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아시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아트바젤이 단순히 아트페어를 개최하는 운영사가 아니라, 문화생태계 구축과 확장에 깊이 있게 관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컨벤션을 넘어 도시 전체를 움직이는 구조는 스위스 바젤이 아트바젤 기간 동안 시 전체가 함께 작동하는 전통에 기반한다.
흥미로운 점은 프리즈 역시 팬데믹 이후 ‘Cock 91 Street’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프리즈 런던이 열리지 않는 시기에도 런던 내에 전시 공간을 운영하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프리즈 서울 하우스’라는 전시 공간으로 서울에도 생겨났다.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실험을 아트바젤과 프리즈 모두 동시에 수행 중이다.
아트바젤은 아시아의 거점인 홍콩뿐만 아니라 아트위크 도쿄도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이를 통해 아시아 미술시장이 활기차게 성장하도록 한다. Art Basel Paris는 유럽의 왕관을 썼고, Art Week Tokyo는 그 왕관의 무게를 분산시키는 또 하나의 실험이다.
아트바젤이 바젤에서 시작해, 마이애미 비치와 홍콩, 그리고 파리와 도쿄, 그리고 카타르로의 확장을 하고 있는 궤적은 ‘완성에서 진화로’, ‘페어에서 생태계로’의 이동을 보여준다.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버텨라.”
이 문장은 더 이상 비유가 아니다. 지금의 글로벌 미술시장에서 그것은 생존의 방식이며, 동시에 한국 미술 시장이 앞으로 걸어가야 할 방향이다.
박준수 기획자
– 출처 :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11144205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