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H. pylori). 2000년대 초만 해도 낯설었던 이름이지만 지금은 요구르트 광고 덕분에 대중에게 꽤 익숙해졌다. 하지만 광고 속 요구르트 한 병으로 없앨 수 있을 것만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이 균은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헬리코박터균은 위장점막에 감염돼 위염, 위궤양은 물론 위암까지도 유발할 수 있는 균으로,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전 세계 인구의 약 40%가 감염돼 있고 국내 유병률도 이에 근접한 수준이다.
문제는 이처럼 유병률이 여전히 높은데 1차 제균치료 실패율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표준 1차 치료로 80% 이상 균이 사라졌지만, 최근에는 70% 안팎까지 떨어진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1차 치료에 쓰이는 항생제인 ‘클래리트로마이신’에 대한 내성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연구진이 새롭게 약물을 조합한 치료법을 시도하고 있다. 10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김준성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 실패 환자에서 테고프라잔 기반 리파부틴 구제요법의 효과’라는 주제의 임상시험에 착수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빠르고 지속적인 위산 억제 효과를 가진 ‘케이캡정(테고프라잔)’을 활용해 내성률이 낮은 항생제 ‘리파부틴’의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있다.
이번 임상시험은 인천성모병원을 포함한 수도권 5개 병원에서 진행되며, 시험군은 케이캡정 기반 3제 요법, 대조군은 기존에 주로 사용되던 PPI(프로톤펌프억제제) 기반 3제 요법으로 구성된다. 치료가 끝난 뒤 4~8주 후 헬리코박터균이 남아있는 지를 확인하는 것이 이번 임상의 핵심(1차) 평가 지표다.
케이캡은 HK이노엔이 개발한 P-CAB(칼륨경쟁적 위산분비억제제) 계열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다. 2019년 국내 출시 이후 단숨에 시장 1위에 올라섰으며, 기술 수출과 완제품 수출을 통해 전 세계 53개국에 진출해 있다. 미국에서는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목표로 현지 3상 임상이 진행 중이다.
케이캡은 위식도역류질환 외에도 위궤양의 치료, 미란성 위식도역류질환 치료 후 유지요법,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제균치료(항생제 병용 시) 적응증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헬리코박터 제균치료에 대해서는 현재 1차 치료 요법에만 허가를 받은 상태다. 이번 임상시험 결과에 따라 향후 구제요법(표준요법 실패 시 시행)에도 적응증 확대 가능성이 기대된다.
김 교수는 “제균치료에서는 위 내 pH를 6 이상인 환경을 만들어 항생제의 효과를 높이는 것이 중요한데 케이캡은 PPI 뿐만 아니라 다른 P-CAB에 비해서도 빠르고 지속적인 위산 억제 효과를 낸다”며 “표준 1차 치료 요법과 비스무스 4제 요법(제균 보조요법)에서도 케이캡의 유효성이 입증된 만큼 본 연구에서도 적절한 약제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 진료 현장에서도 케이캡은 PPI에 비해 위산 억제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며 유전자 다형성에 영향을 적게 받아 모든 환자에서 균등한 치료 효과를 나타낸다”며 “또한 식전에 복용해야 하는 PPI와는 달리 식사와 관계없이 복용할 수 있어 복약 순응도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김준성 교수와의 일문일답.
-연구를 시작한 배경은 무엇인가.
“미국 소화기학회 가이드라인과 유럽 가이드라인에서 리파부틴 기반 3제요법을 여러 항생제 치료에 실패한 환자에 대한 구제요법으로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리파부틴 기반의 연구 결과가 없고, 리파부틴이 기존 항생제와 비교해 내성이 적은 점을 고려해 연구를 기획했다.”
-이번 연구의 임상 설계와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달라.
“이번 연구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제균 치료에 실패한 환자를 대상으로 리파부틴 기반 3제 요법의 효과를 평가하기 위한 연구다. 시험군에서는 케이캡정을 기반으로 한 3제 요법을 14일간 투여하고, 대조군에서는 기존 PPI인 ‘란소프라졸’을 기반으로 한 3제 요법을 적용해 제균율을 비교 분석할 예정이다. 인천성모병원을 포함한 경인지역 소재 5개 의료기관에서 수행되며 현재 임상시험계획(IND) 승인을 완료했고 연구 개시를 앞두고 있다.”
-케이캡과 리파부틴을 조합한 이번 3제 요법은 기존 구제치료와 비교해 어떤 전략적 차별점이 있다고 보나?
“1차, 2차 제균 치료에 실패한 환자에서는 여러 항생제에 내성이 생기는 경우가 많으므로 기존 구제요법으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번 3제 조합은 리파부틴의 낮은 내성률, 케이캡정의 빠르고 지속적인 위산 억제 효과를 활용하기 때문에 제균율에도 효과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4제 요법에 비해 상대적으로 복용이 간단해 순응도 측면에서도 더 우수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연구 결과로 기대하는 주요 임상적 의의는?
“국내에서는 리파부틴 기반 구제요법의 전향적 연구 결과가 부족하기 때문에 리파부틴의 제균 효과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좋은 연구가 될 것 같다. 또한 케이캡정 기반의 리파부틴 제균 치료를 PPI와 비교함으로써 케이캡의 강력한 위산분비억제 효과가 어떻게 작용할지도 확인해볼 수 있다. 제균 치료 효과가 긍정적으로 나온다면 향후 제균 치료에 실패한 환자에서 케이캡정 기반의 리파부틴 3제 요법을 대안으로 선택할 수 있는 근거 자료가 될 것이다.”
-테고프라잔은 현재 1차 제균치료에만 적응증이 있는데 이번 연구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오면 향후 적응증 확장 가능성도 있다고 보나?
“현재 P-CAB 기반 구제 요법의 근거가 부족한 실정이기 때문에 본 연구를 통해 케이캡정 기반 구제 요법의 임상적 활용 가치에 대한 근거를 축적하고, 향후 국내 가이드라인에도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The post ‘케이캡+리파부틴항생제’, 헬리코박터 제균 실패 환자에 해법될까 appeared first on 코메디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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