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작은 루브르, 파리지앵이 한 템포 쉬어가는 예술 궁전

센 강과 샹젤리제 사이, 윈스턴 처칠가에 자리한 프티 팔레(Petit Palais)는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파리 시민의 일상을 품어주는 예술의 쉼터다. 프티 팔레는 그랑팔레, 알렉상드르 3세 다리와 함께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지어졌으며, 1902년부터 파리 시립 미술관(Musée des Beaux-Arts de la Ville de Paris)으로 운영되어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되어 왔다.

이 미술관을 설계한 샤를 지로(Charles Girault)는 프티 팔레를 “모두를 위한 궁전(un palais pour le peuple)”이라 정의했다. 그는 전통적인 보자르 양식 위에 빛의 개방감을 더해 실용적이면서 감각적인 공간을 완성했다. 둥근 곡선과 균형 잡힌 대칭이 조화를 이루고, 돔 천장을 따라 들어오는 자연광은 회랑과 창밖의 정원을 하나의 선으로 이어준다. 거대한 볼륨감과 화려한 장식은 궁전을 연상시키지만,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궁전이 현대 시민에게 열린 장소로 다시 태어난 듯하다.

금빛 아치가 빛나는 프티 팔레의 정문 / 사진. ⓒ김현정
금빛 아치가 빛나는 프티 팔레의 정문 / 사진. ⓒ김현정

작은 루브르, 시대를 아우르는 컬렉션

대리석 계단 위의 금빛 아치형 문을 지나 중앙 홀로 들어서면, 패전 병사를 안은 승리의 여신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앙토냉 메르시에(Antonin Mercié)의 <Gloria Victis>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패배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기리는 청동상 앞을 지나, 밝은 회랑을 따라 걸으면 모네와 세잔을 비롯한 19세기 거장들의 회화 작품뿐만 아니라 시대의 경계를 넘어선 조각과 장식미술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계단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기원전 4세기의 도자기와 15세기 종교화가 나란히 놓여 고대와 르네상스의 시간이 한 공간 안에서 맞닿는다.

<Gloria Victis> 청동상이 위치한 중앙 홀 / 사진. ⓒ김현정
<Gloria Victis> 청동상이 위치한 중앙 홀 / 사진. ⓒ김현정

프티 팔레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작은 루브르’라 불릴 만큼 시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상설전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끈다. 그 여정의 끝은 정원 한편에 위치한 CAFÉ 1902로 이어져, 이곳을 찾은 누구나 예술이 일상으로 스며드는 순간을 경험한다.

시대와 장르가 교차하는 전시장 전경 / 사진. ⓒ김현정
시대와 장르가 교차하는 전시장 전경 / 사진. ⓒ김현정

예술이 머무는 오후, CAFÉ 1902

2000년대 초 프랑스는 주 35시간 근무제(loi Aubry)를 시행하며, 노동시간 단축을 넘어 일과 삶의 균형에 가치를 두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나 오후의 짧은 휴식은 단순한 여유가 아닌 삶의 일부로 인식되었고, 파리 곳곳의 미술관과 공공장소에는 자연스레 카페가 자리했다.

그중에서도 프티 팔레의 CAFÉ 1902는 도심 한가운데에서 예술과 자연을 함께 즐길 수 있어 더욱 특별하다. 오르세 미술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의 카페가 실내에 자리한 반면, 이곳의 야외 테라스는 햇살과 바람이 스며드는 또 하나의 전시장처럼 느껴진다.

햇살이 스며드는 프티 팔레 뒤편의 정원 / 사진. ⓒ김현정
햇살이 스며드는 프티 팔레 뒤편의 정원 / 사진. ⓒ김현정

9월 말, 파리 패션위크 기간의 프티 팔레는 한층 더 활기를 띠고 있었다. 맞은편 그랑팔레에서는 패션쇼가 한창이었고, 카메라를 든 몇몇 사진가들은 현장을 벗어나 비밀의 정원에서 카페 알롱제(Café Allongé) 한 잔을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노부부는 찻잔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눴고, 아이와 함께 온 엄마들은 정원 테라스에 앉아 오후의 햇살을 즐겼다.

카페에서는 샐러드나 타르트 같은 가벼운 스낵 메뉴를 비롯해 브루키(브라우니+쿠키)와 커피가 특히 인기가 많다. 브루키를 한입 먹는 순간, 진한 초콜릿과 버터의 향이 어우러져 프티 팔레에서 보내는 오후의 여유로움이 한층 더 길게 이어진다. 프티 팔레 카페에서의 시간은 마치 예술과 삶이 자연스럽게 만나 한 템포 쉬어가는 파리지앵의 일상 같다.

[좌] 오후의 티타임을 즐기는 사람들 [우] 브루키와 카페 알롱제 / 사진. ⓒ김현정
[좌] 오후의 티타임을 즐기는 사람들 [우] 브루키와 카페 알롱제 / 사진. ⓒ김현정

모두의 어린 시절이 빛나는 곳

현재 전시는 장 바티스트 그뢰즈(Jean-Baptiste Greuze)의 <빛나는 어린 시절(Childhood Illuminated)>이다. 그뢰즈는 18세기 프랑스에서 일상의 감정을 회화로 옮긴 작가로, 신화나 영웅 대신 평범한 사람들의 감정에 주목했다. 그는 빛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며, 보다 섬세한 붓질로 아이의 얼굴에 머무는 빛과 생동감 있는 표정을 그려냈다.

꽃을 마주한 어린 아이의 순수함을 담은 장 바티스트 그뢰즈의 작품 / 사진. ⓒ김현정
꽃을 마주한 어린 아이의 순수함을 담은 장 바티스트 그뢰즈의 작품 / 사진. ⓒ김현정

그림 옆의 캡션을 읽다 보면 관람객은 저마다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아이에서 노년까지 다양한 세대가 함께 머무는 전시실 풍경은 프티 팔레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임을 보여준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미술관, 프티 팔레의 여유로운 오후 풍경 / 사진. ⓒ김현정
모두에게 열려 있는 미술관, 프티 팔레의 여유로운 오후 풍경 / 사진. ⓒ김현정

김현정 칼럼리스트


– 출처 :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10274844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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