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교 아니고 학교!”…대구 곳곳서 한글 배우는 어르신

[대구=뉴시스]정재익 이상제 기자 = “학조 아니고 핵교 아니고 학교!”

한글날을 사흘 앞둔 6일 오후 대구시 서구 날뫼학당. 50여명의 노인이 한글을 배우고 있는 곳이다.

이날은 25명의 노인이 듣는 중급반 수업이다. 밝은 얼굴로 교실에 들어선 노인들은 받아쓰기 숙제 공책을 맨 뒷자리에 가지런히 올려뒀다. 공책에는 빼곡히 글공부한 흔적이 보였다.

출석 시간이 다가오자 노인들은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는 듯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사정이 생겨 오지 못한 노인 1명을 제외하고는 전원 참석했다.

본격적인 수업에 앞서 강사가 “자, 오늘도 몸 한번 풀고 시작할까요?”라며 트로트 음악을 틀자 노인들은 박장대소하며 몸을 신나게 흔들었다.

수업은 교재에 나오는 그림을 보고 네모 칸에 알맞은 낱말을 적으며 맞춤법과 물건의 명칭을 동시에 배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중급반 수업은 ‘불이 난 곳을 향하여 호스를 빼 들고 손잡이를 움켜쥡니다’, ‘먼저 침착하게 손잡이를 잡고 불이 있는 곳으로 다가갑니다’ 등 읽기 힘든 문장도 있었지만 노인들은 강사의 말에 따라 침착하게 글씨를 써나갔다.

“이거 맞게 쓰는 거 맞아요?”라고 질문하던 정말임(75·여)씨는 “어린 시절 장티푸스를 앓아 학교에 입학해놓고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며 “나이가 들어 새로운 것을 배우니 모든 것이 새롭고 재밌다”라며 웃음 지었다.

수업 도중 한 노인이 옆 학생에게 “바쁜 와중에 글 배울라고 학조도 나오고 대단하데이”라고 하자 강사는 “에헤이 학조 아이라 카니까네, 다시 따라 해봅시다 학조 아니고 학교, 핵교 아니고 학교! 우리는 이제 배우는 사람이기 때문에 제대로 말해야 합니다”고 교육했다.

초급반부터 배웠다는 윤금년(81·여)씨는 “촌에서 자라다 보니 어린 시절 살림만 하다 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며 “지금은 선생님께서 재밌고 쉽게 참 잘 가르쳐주셔서 읽고 쓰는 걸 제법 할 수 있게 됐고 수업 시간이 매번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대부분 할머니 교육생 사이에서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가 눈에 띄었다.

이석우(74)씨는 “할머니들이 여자들 속에서 남자 하나 있으니 웃긴다고 놀려 스트레스다”며 “젊은 시절 일만 하다 글을 배우려니 머리가 둔해져 어려움도 있지만 배우는 것은 늘 새롭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같은 날 오후 대구시 남구 평생학습관. 이곳 문해학당에서는 20여명의 노인이 한글을 배우고 있다.

이날은 흥부와 놀부 이야기를 가지고 읽기 교육이 진행됐다. 교사의 지도에 따라 학생들이 느리지만 또박또박 이야기를 읽어나갔다.

간혹 모르는 글자가 있으면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며 읽기도 했다. 배운 지식을 잊지 않기 위해 필통에서 연필을 꺼내 노트에 필기하는 노인도 눈에 띄었다.

수강생 중 최고령자 이모(83)씨는 “집에 있으면 잠만 자는데 이렇게 수업도 듣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어 너무 좋다”며 웃었다.

이모(77)씨는 “글공부를 시작하고 2년 채 되지 않아 초등 검정고시에 합격했다”며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도전을 할 계획이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수십 년간 문해학당에서 교육을 해온 고정조(62)씨는 “보통 문해학당에서 글만 배운다고 생각하지만, 생각의 폭을 넓히고 남을 배려하는 등 인생 수업도 병행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구 날뫼학당은 성인 비문해자 대상으로 매주 화·목 초급반 25명, 매주 월·수·금 중급반 25명으로 나눠 문해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남구 문해학당에서는 지역 내 저학력, 비문해 노인을 대상으로 기초 생활능력 향상을 위해 수준별, 단계별 맞춤 교육을 하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jjikk@newsis.com, king@newsis.com


– 출처 : http://www.newsis.com/view/?id=NISX20231009_0002475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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