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화혈색소가 10% 가깝게 치솟았던 60대 여성 당뇨병 환자는 치료 중 혈당이 떨어져 당뇨약인 메트포르민의 복용을 중단했다. 그런데도 당화혈색소가 5.4%까지 뚝 떨어지고, 어지럼증으로 서너 차례나 낙상 사고를 당해 응급실을 찾았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 의대 연구팀은 제2형당뇨병 환자인 67세 여성이 당뇨약을 잘 안 먹고, 운동도 규칙적으로 하지 않고, 당뇨식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는데도 당화혈색소가 뚝 떨어진 뒤 저혈당으로 고통 겪은 사례를 보고했다.
연구팀은 정밀 검사 끝에 이 환자에게 인슐린이 과다 분비되는 ‘인슐린종’이라는 새로운 진단을 내렸다. 췌장 신경내분비종양의 일종인 인슐린종은 ‘호르몬 창고'(신경내분비세포)서 발생하는 데 비해, 췌장암(췌장선암)은 ‘소화액 통로'(췌관세포)에서 발생한다.
췌장암(췌장선암)은 100%가 악성이지만, 인슐린종은 90%가 양성이고 10%만 악성이다. 췌장암의 주요 증상은 복통, 황달, 급격한 체중 감소 등이고 인슐린종의 주요 증상은 식은땀, 떨림, 어지러움(저혈당) 등이다.
이 환자는 인슐린종 가운데서도 양성이었다. 하지만 결코 안전하지 않았다. 양성 인슐린종에 따른 통제 불능의 인슐린 과다 분비로 인한 저혈당 쇼크로 생명이 직접적으로 위협당할 수 있었다.
연구팀에 의하면 이 환자는 최근 2~3개월의 혈당 수치를 보여주는 당화혈색소(HgbA1c)가 2018년 5월 9.8%에서 2019년 5월 6.6%로 떨어졌고 메트포르민 복용을 중단한 이후인 2024년 8월에는 5.4%까지 크게 떨어졌다. 일반적으로 당화혈색소 수치가 4.0~5.6%이면 정상이고, 5.7~6.4%이면 전당뇨(당뇨 전 단계)이고, 6.5% 이상이면 당뇨병이다.
최근 병원을 찾을 당시, 이 60대 여성 환자는 저혈당 발작, 발한, 떨림, 현기증, 실신 직전의 위험한 상태, 메스꺼움, 쇠약감, 반복적인 낙상 등 다양한 증상을 호소했다. 그녀는 10년 전 제2형당뇨병 진단을 받았고 고혈압·고지혈증을 앓았고 관상동맥병으로 스텐트를 삽입한 상태였다. 우울증·위식도역류질환과도 싸우고 있었다.
연구팀은 복부 CT(컴퓨터단층촬영)및 MRI(자기공명영상) 검사로 췌장의 꼬리 부위에서 멍울(종괴)을 확인하고 췌장 일부(원위부 췌장) 및 비장 절제술을 시행했다. 수술 후 경과는 순조로웠고, 저혈당 발작 및 낙상 사고가 사라졌다. 다만 수술 후 인슐린 분비 감소 때문에 당화혈색소가 8% 이상으로 다시 높아져 혈당 관리에 힘쓰고 있다.
이 연구 결과(Decreasing Hemoglobin A1c: Progress or Pathology?)는 최근 국제 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실렸다.
인슐린종의 주요 증상으로는 공복 때 저혈당 증상, 낮은 혈당 수치 지속, 당분 섭취 후 증상 소실 등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공복 상태나 운동 후에는 혈당이 뚝 떨어져 식은땀, 떨림, 현기증 등 저혈당 증상이 나타난다. 둘째, 저혈당 증상이 나타날 때 혈당을 재보면 보통 50mg/dL 이하로 매우 낮다. 공복 혈당(8시간 이상 금식 후)의 정상 범위는 100mg/dL 미만이다. 셋째, 사탕이나 오렌지 주스 등 당분을 섭취하면 즉시 증상이 좋아진다.
이번 연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화혈색소 5.4%는 정상적인 혈당 수치이지만, 당뇨병 환자가 어지러워 잘 걷지 못한다면 낮은 혈당도 무의미하며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이 환자는 2년 사이 병원 진료 때 10명의 레지던트(전공의)를 거쳤다. 담당 의사가 자주 바뀌다 보니, 환자가 약 복용을 중단했는데도 당화혈색소 수치가 왜 낮은지에 대한 의문을 품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당뇨병 환자가 혈당을 낮추기 위해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등 이렇다 할 노력을 쏟지 않았는데도 이유 없이 당화혈색소가 낮아졌다면, 이는 축복이 아닌 심각한 경고일 수 있다. 특히 나이가 든 사람이 낙상 사고를 여러 번 당했다면 이를 단순한 노화로 여겨선 안 된다. 췌장 건강과 인슐린의 과다 분비 여부를 잘 살펴야 한다.
인슐린종은 주로 배가 고픈 이른 아침이나 공복 상태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정신이 몽롱하거나 밤사이에 식은땀을 심하게 흘리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인슐린 문제를 의심해 봐야 한다. 인슐린종은 크기가 1~2cm로 매우 작아 일반 건강검진용 CT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양성 인슐린종은 일찍 발견해 수술로 제거할 경우 완치율이 90%가 넘는다. 당뇨병 환자에게 종양 제거 후 혈당 재상승은 정상적인 치료 과정이므로, 수술 후에도 당뇨를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Q1. 당뇨병 환자가 혈당이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무턱대고 좋아하면 안 될 이유가 있나요?
A1. 그렇습니다. 약물 복용이나 식단 조절 없이 혈당이 비정상적으로 낮아지는 것은 몸속에 인슐린을 과다하게 뿜어내는 종양이 생겼다는 신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사례처럼 낙상 사고나 식은땀 같은 저혈당 증세가 동반된다면 즉시 전문의를 찾아야 합니다.
Q2. 인슐린종은 췌장암과 어떻게 다른가요?
A2. 흔히 말하는 췌장암(췌장선암)은 생존율이 매우 낮고 공격적인 악성 종양입니다. 반면 인슐린종은 90%가 양성이며, 수술로 제거하면 완치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암이 아니라고 해서 방치하면 통제 불능의 저혈당 쇼크로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병입니다.
Q3. 수술 후 왜 다시 당뇨병 약을 먹고 당화혈색소가 올라갔나요?
A3. 종양(인슐린종)이 분비하던 과도한 인슐린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수술 전에는 종양
때문에 혈당이 어쩔 수 없이 낮게 유지됐으나, 수술로 종양을 없애자 환자가 원래 갖고 있던 제2형 당뇨병 상태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는 병이 더 나빠진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치료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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