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신경외과학회(이사장 김긍년 연세대 의대 교수)는 특별한 건물을 짓기 위해 회원들의 기부금을 모으고 있다.
2021년 10월 당시 학회 이사장이었던 김우경 가천길병원장이 회원들에게 “학회 규모가 커지면서 새 사무실로 이전해야 하는데 이 기회에 국제적으로 기여하는 일을 하면 어떨까?”하며 의견을 구했을 때 장일태 나누리병원 이사장과 김문철 포항S병원 원장 등이 무릎을 치며 거금 기탁을 약속했다. 특히 장 이사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 신경외과 의사들이 개발도상국의 젊은 의사들을 가르치는 공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김 이사장은 이듬해 춘계학술대회 개회사를 통해 공식선언했다. “선진국의 도움으로 우리 학회가 시작했으므로 이제는 개발도상국에 도움을 베풀며 우리의 의료문제를 해결하는 공간을 만들겠습니다.”
신경외과는 우리나라 의료의 역사와 특징, 모순이 압축돼 있는 의료 분야다. 미국과 유럽의 도움으로 출발해서 의사들이 밤낮없이 일하며 의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시켰지만 비정상적 보험제도 탓에 급여-비급여, 대학병원-개원가, 수도권-지방 간극이 깊어지며 모순이 쌓인 것. 재작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숨지며 ‘필수의료 논쟁’이 시작한 진료과이기도 하다.
6.25 전쟁 피 튀기는 현장서 중요성 부각
신경외과의 발전은 6.25 전쟁이 기폭제가 됐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 서울대 김시창, 서울여자의대(고려대 의대) 이주걸, 연세대 이기섭 교수 등이 외과 의사로서 뇌전증, 뇌수두증, 뇌종양 등을 수술했지만 뇌신경만 전문적으로 수술하는 의사는 없었다. 그러다가 6.25 전쟁이 발발하자 국내 의사들이 그야말로 피 튀기는 생명의 현장에서 신경외과 수술을 체험하며 중요성을 뼛속 깊이 느꼈다.
덴마크는 왕실 소유의 배 유틀란디아호를 병원선으로 개조해 부산항으로 보냈다. 덴마크 최고의 신경외과 의사로 덴마크 국립의료원 뇌신경센터를 만든 에두아르트 부슈 박사가 직접 와서 매일 같이 최첨단 수술을 시행했다. 국내 의대 교수들은 이곳과 미8군 야전병원 등에서 세계 최고의 뇌-척수 수술을 생생히 체험하며 배웠다. 이들은 대한민국 군병원에서 장병들을 치료하다, 전쟁이 멈추자 미국과 유럽으로 유학 가서 신경외과학을 철저히 배워왔다.
1953년 이주걸 교수(1914~2006)가 수도의대(고려대 의대) 병원장으로서 국내 최초로 신경외과학를 만들었고, 심보성 교수(1924~2001)는 서울대병원, 문태준 교수(1928~2020)는 세브란스병원에 신경외과를 개설했다. 이 교수는 대구의학전문학교(경북대 의대) 출신으로 경성여자의전, 전남대 의대, 서울여자의대 등에서 외과 의사로 뇌신경 환자를 수술했고 전쟁 때 부산 제3육군병원에서 뇌신경수술을 하다 수도의대 병원장이 됐다.
또 심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여자의대에서 외과 의사를 하다 전쟁 때 미군병원에서 신경외과 수술을 접했다. 미네소타 프로젝트로 미국 연수를 다녀온 뒤 뇌흡충증 환자의 대뇌를 절제하는 수술로 뇌기능을 회복시켜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문 교수는 서울대 의대 출신으로 미국 토머스 제퍼슨대에서 연수하고 온 뒤 연세대 의대 교수로 근무하다 국회의원, 대한의학협회(현 대한의사협회) 회장, 보건사회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이주걸 회장-이헌재 부회장 체제로 학회 출범
1961년 3월 11일 이들과 김원묵, 이헌재, 임광세, 정희섭, 허곤 등 18명이 서울 소공동 국제호텔에 모여 학회 창립회의를 개최했고 그해 10월 29일 서울대병원에서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 1차 대한신경외과학회 창립총회 및 학술대회를 열었다. 초대 회장은 이주걸, 부회장은 이헌재 교수. 이 교수(1921~1981)는 미국 미시간대 의대에서 신경외과를 전공했고 학회 창립 직전 수도의대 교수로 부임했다. 1966년 연세대 의대로 자리를 옮겨 수술현미경을 도입하고 뇌동맥류 수술에 자신이 개발한 클립을 사용해 수술 성공률을 급격히 올렸다. 그는 또 국내 최초로 신경외과를 4개 분야로 나눠 뇌혈관(이규창-허승곤), 정위기능(정상섭-장진우), 척추(김영수-윤도흠), 소아(최중언-김동석 교수) 등에서 세계적 대가가 나오도록 했다. 그러나 한창 막강 세브란스 신경외과를 구축하던 60세 때 집에 새로 놓은 연탄 보일러에 가스가 샌 탓에 부인과 함께 세상을 떠나 의료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글로벌 의료’의 도움을 받아 출발한 학회는 늘 세계를 염두에 뒀다. 1965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3차 세계신경외과학회연맹(WFNS) 학술대회에서 인도, 일본에 이어 아시아 세 번째 회원국이 됐다. 1973년 10월 서울에서 개최한 제13차 대한신경외과학회 학술대회에선 캐나다의 찰스 조지 드레이트, 미국의 리처드 슈나이더 등 세계적 대가들이 대거 방한해 젊은 의사들의 ‘국제화 마인드’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학회는 2013년 서울 코엑스에서 110개 나라 4500여명의 의료진이 참석한 가운데 WFNS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선 대한민국 신경외과학의 내공을 알려주면서 LG전자가 개발한 당시 세계 최대의 84인치 3D TV로 세계 대가들의 수술 장면을 3차원 영상으로 시연하며 참가자들의 탄성을 불러냈다.
13개 분과 3500명 회원 대형학회로 성장
64년 전 18명으로 시작한 학회는 척추신경외과학회, 뇌혈관외과학회, 정위기능신경외과학회, 뇌종양학회, 소아청소년신경외과학회 등 13개 분과에 정회원 3500명의 대규모 학회로 성장했다. 신경외과는 치료영역이 수술뿐 아니라 비수술 분야까지 확대했고 수많은 환자를 살리거나 고통을 줄여주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은 서서히 곪아서 터지기 직전까지 왔다고 느낀다.
“필수의료의 중심 역할을 해왔지만, 뇌수술에 대한 보험수가가 너무 낮고 늘 소송 위험에 처해있어 20여년 전부터 전공의들이 기피해 왔습니다. 최근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뇌혈관질환 수가가 올랐지만 응급, 야간, 개두술 등 일부만 올려 근원적 해결에 근접도 못했지요. 뇌혈관, 뇌종양 담당 의사는 가뜩이나 부족한 데다 지방 의사들의 수도권 이직이 심각합니다. 개원가와 대학병원 의사들의 수익 차이가 갈수록 커지고 있어 대학교수들에게 명예와 보람만 강조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학회에선 학문적 발전을 꾀하면서 이런 점들도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갖고 있습니다.”-학회 김긍년 이사장
“이런 문제를 하나둘씩 해결하면서 국제적 역할에도 충실해야 하는 게 학회의 숙제입니다. 우리가 세계의 도움으로 이만큼 성장했고 한국의 위상도 높아졌는데,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곳의 요청을 외면할 수는 없지요. 국제신경외과교육연구센터는 국내에선 젊은 인재 양성과 함께 제도 개선 연구 등을 추진하며 국제적으로 개발도상국 의료 지원의 중추가 될 겁니다. 회원 의사들이 적극 참여하고 있고 독지가들도 뜻을 보탤 것으로 기대합니다.”
The post “6.25 때 배워 키운 의술, 필요한 나라에 전해야죠” appeared first on 코메디닷컴.
– 출처 : https://kormedi.com/27047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