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그리워한 소년의 시, 영화로 만난다

엄마를 그리워한 소년의 시, 영화로 만난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는 방식과 해석이 다양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이야기가 특수하지만 보편성을 얻고, 신파로 읽히는 게 아니라 위로가 되길 바라요.”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민병훈 감독이 말했다. 민 감독은 자신과 아들 시우 군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약속’을 만들었다.

2019년 민 감독은 아내를, 시우 군은 엄마를 잃었다. 병원을 찾았을 때 아내 안은미 작가는 이미 폐암 말기였고 세 식구는 안 작가의 희망에 따라 제주도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안 작가는 제주살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지난 1일 개봉한 영화엔 민 감독 부자(父子)가 제주도에서 서로 위로하며 가족을 잃은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이 오롯이 담겼다. 민 감독은 “영화를 찍고 편집하는 데 2년 정도 걸렸다. 영화를 내놓기까지 고민이 계속 됐다”며 “슬픔과 아픔을 우리 안으로만 가지고 가는 것보다 우리에게 공감하면서 관객들도 앞으로 나아가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사연은 최근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시우 군이 ‘시 쓰는 제주 소년’으로 출연하면서 알려졌다. 민 감독이 영화를 구상하게 된 것도 시우 군이 시를 쓰면서다. 눈, 바다, 안개, 숲 등 주변의 모든 것들이 시우 군에겐 엄마의 손길이고 목소리다. 영화의 제목은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는 엄마의 약속을 주제로 시우 군이 쓴 시에서 따 왔다.


시우 군에게 시는 천국으로 간 엄마를 향한 사랑이자 그리움이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시우 군은 ‘비는 매일 운다. 나도 슬플 때는 얼굴에서 비가 내린다’고 생애 첫 시를 썼다. ‘네 번째 계절’이라는 시에서 아이는 천국에 있는 엄마한테 벚꽃을 가져다 주고 싶어서 자신이 죽을 때는 봄이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영원과 하루’에선 ‘생명은 끝이 있지만 희망은 끝이 없어. 길은 끝이 있지만 마음은 끝이 없어. 내가 기다리고 있는 엄마는 언젠가 꼭 영원히 만날 수 있어’라고 말한다.

민 감독은 “시우가 처음 쓴 시 ‘슬픈 비’를 읽고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아이가 또박또박 써 온 시를 보고 기특하기도 했지만, 그 마음이 읽혔다”면서 “마음을 시로 좀 더 내보이면 어떻겠냐고 권하고 격려하기 시작했다. 시를 쓰면서 시우의 마음이 좋아지고 나도 위로를 받게 됐다”고 돌이켰다.

시를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시우 군은 “전에는 엄마 돌아가신 것 자체가 엄청 슬펐는데 시를 쓰다보니 오히려 엄마를 생각하면서 더 기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시우 군은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다. 지금도 꾸준히 시를 쓰는지 묻자 “이제는 너무 어린이같이 쓰면 안 되고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진지하게 답했다.

엄마를 생각하며 시를 쓰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일상 생활을 주제로 쓰기도 한다. 시우 군은 “살기 위해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시를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시를 쓰지 않으면 찜찜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약속’엔 시우가 쓴 시 23편과 함께 민 감독이 담은 제주의 자연이 등장한다. 민 감독은 아내가 좋아하던 숲과 나무, 세상에 두고 온 아이가 궁금해서 찾아온 아내처럼 집 근처를 기웃거리는 노루, 아들이 학교에 가고 난 후 자연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자신의 모습 등을 카메라에 담았다.

영화를 세상에 내보냈을 때 대중의 반응을 우려하지 않은 건 아니다. 민 감독은 “그 부분에 있어서 영화감독인 난 훈련이 돼 있지만 누군가 ‘시우를 소모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면서 “하지만 이 작업을 통해 우리의 삶이 이전보다 좋아졌다는 걸 우리가 스스로가 알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자연이 주는 해방감과 용기도 전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첫 영화가 개봉한 소감을 아이에게 물었다. 시우 군은 “영화로 나오게 될 줄 모르고 찍힌 장면들이 많아 부끄럽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장면들, 엄마가 나오는 장면도 있어서 좋다”며 “아기 때부터 아빠가 영상을 많이 찍어줘서 화면에 나오는 게 어색하지 않다.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이 고맙다”고 제법 의젓하게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 출처 : https://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328396&code=13200000&sid1=c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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